고려와 거란(요나라)의 관계는 10~11세기 동북아 정세 속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외교적 전선이었다. 양국은 총 세 차례의 전쟁을 벌였지만, 그 사이에도 수많은 외교 서한과 국서(國書)를 통해 상대국과의 관계를 조율하고자 했다. 서한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정치적 의도와 국가의 자존심, 문화적 정체성을 담은 외교 수단이었다. 본문에서는 고려와 거란이 주고받은 주요 외교 서한 문구를 중심으로 어투의 차이, 표현 방식, 정치적 메시지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외교 전략의 실제 면모를 드러낸다.
외교 서한의 역사적 맥락
고려와 거란은 서로를 '형제국'으로 인정할 수 없었던 복잡한 국제 질서 속에 있었다. 거란은 자신들을 ‘천자국’으로 자처하며 고려를 속국처럼 대하려 했고, 고려는 자주성을 유지하고자 강력한 언어로 반응하였다. 이러한 대립은 외교 서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특히 ‘형제’냐, ‘신하’냐 하는 호칭 문제는 양국 간 외교 갈등의 핵심이었다. 고려는 송나라와도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중외교 전략을 통해 자주성을 지키려 하였고, 이는 외교문에서 절묘한 언어 선택으로 표현되었다.
거란 측 외교문 어휘의 특징
거란은 자신들이 중화 세계의 중심임을 주장하며, 고려에 대해 위계적 언어를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거란은 고려를 향해 “속국(屬國)”이나 “변방의 작은 나라”라는 표현을 서한에 자주 삽입하였다. 또한, “짐(朕)”이라는 황제 전용 어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고려에 대해 명령조의 문장을 구사하였다. 다음은 실제 예문이다. “짐은 너희가 예를 다하지 않음을 유감스럽게 여긴다.” 이는 외교적 문서라기보다는 강압적 통보에 가까우며, 정치적 우위를 강조하려는 목적이 뚜렷하다.
고려 측 외교문 어휘의 특징
고려는 거란의 강압적 어조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인 외교 문서를 작성하려 했다. 고려는 자국 국왕을 ‘본조’ 혹은 ‘상국(上國)’으로 지칭하며,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다. 고려의 서한에서는 주로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어조가 드러나며, ‘하직’이나 ‘검결(感訣)’ 등의 문어체 표현을 활용하여 예의를 지키되 굴종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다. 실제 서한 예시는 다음과 같다. “본조는 형제의 예로써 예를 다하였으나, 귀국은 도리어 군신의 예를 강요하니, 이는 예에 어긋납니다.” 이 문장은 명확한 논리 구조를 통해 거란의 요구를 반박하면서도, 외교적 예법은 잃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호칭 문제와 정치적 상징성
외교 서한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호칭 문제였다. 거란은 고려 왕을 '고려국왕'이라 부르기를 원했지만, 고려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스스로를 '대고려국 상주국왕' 등으로 표기하였다. 이는 형식적 호칭 속에 자주권을 내포한 표현이었다. 반면, 거란은 계속해서 “짐이 너희에게 명한다”와 같은 문장을 통해 군신 관계를 기정사실화하려 하였다. 이에 대한 고려의 반응은 문장 구성 방식에서 매우 신중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감히’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공손한 표현을 유지하되, 실질적인 복종 의사는 포함하지 않았다.
문장의 구조와 감정의 절제
고려의 외교 서한은 감정적 대응을 피하고, 논리적이고 격조 있는 문장으로 대응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이치에 어긋납니다’, ‘의례에 맞지 않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상대방의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감정적 표현을 배제함으로써 외교 문서로서의 품위를 유지했다. 거란이 공격적인 어조를 사용할수록, 고려는 더욱 정중한 문장을 통해 자국의 문화적 우위와 정치적 성숙함을 드러내려 했다. 이는 고려 외교 문서가 단순히 정세 대응이 아닌, 문화 외교의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 예문 비교 분석
아래는 거란과 고려가 실제 주고받은 외교 서한 문구의 비교 예시이다. 거란 측: “짐은 너희 고려왕에게 군신의 예를 다할 것을 명한다.”
고려 측: “신의 나라는 본래 형제의 예로써 교류하였으니, 감히 군신이라 칭할 수 없습니다.” 이 문구에서 볼 수 있듯, 고려는 반론을 제기할 때에도 '감히', '본래', '의례' 등의 단어를 선택해 정중함과 논리를 모두 유지했다. 이는 언어를 통해 국제 정치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했던 고려의 전략을 잘 보여준다.
문화와 외교의 연결성
고려는 거란과의 외교에서 단순히 정치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넘어, 자국 문화의 품격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문장의 구조, 어휘 선택, 서체까지 신중하게 결정되었고, 외교 문서는 고려의 국제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한은 단순한 서신이 아니라 정치 문서이자 외교 전략, 나아가 문화 수출의 도구였다. 고려의 외교관들은 유학적 교양과 문장력을 갖추었으며, 이들이 작성한 문서는 오늘날에도 높은 문학적 가치와 전략성을 동시에 평가받고 있다.
맺음말
고려와 거란의 외교 서한은 단순한 통신이 아닌, 전략과 외교의 예술이었다. 고려는 문장 하나하나에 자주성과 품격을 담아냈고, 거란의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문명국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기록은 지금도 국가 외교의 정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