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정치체제의 변화뿐 아니라 의생활에도 뚜렷한 계층 구분이 반영된 시기였다.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한 상류 계층의 복식은 화려하고 규범화된 형태를 띠었으며, 일반 백성의 의복은 실용성과 절약이 강조되었다. 신분제 사회였던 고려에서는 의복이 곧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이었고, 이는 정치적 이념과 종교,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 따라 계속 변화하였다. 본문에서는 고려시대 의복을 계층별로 구분해 살펴보고, 시대 흐름에 따른 복식 양식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왕실과 귀족의 복식: 권위의 상징
고려 왕실의 복식은 국왕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했다. 초기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복식을 계승하는 형태였지만, 송나라와의 외교 이후 중국식 복제가 도입되면서 왕과 신하의 의복 체계가 체계화되었다. 왕은 붉은 곤룡포를 착용하였고, 황금 자수와 용 문양을 통해 왕권의 상징성을 강조했다. 왕비와 궁녀들도 일정한 복장 규범을 따랐으며, 궁중에서는 색상과 소재의 사용에 철저한 제한이 있었다. 귀족 계층은 관직에 따라 관복을 달리 착용했고, 평상시에도 비단이나 견직물로 만든 고급 의복을 입었다. 모자, 띠, 신발까지도 신분을 구분하는 요소였다.
문벌귀족과 관료층의 복장
고려 중기부터 등장한 문벌귀족은 세습적인 특권층으로 자리 잡았고, 그들의 의복은 계급과 권력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이들은 중국 송나라의 복식을 모방하는 한편, 한국적 요소를 결합해 독특한 복장 문화를 형성하였다. 특히 관복은 관등에 따라 색과 형태가 엄격하게 구분되었고, '품계별 복식'이 공식 문서에 의해 규정되었다. 관리들은 조복이나 단령을 착용했고, 흉배(가슴 장식)를 통해 관직을 나타냈다. 사대부 계층의 평복은 소박했으나 세련된 절제미를 추구하였으며, 모자와 신발까지 엄격한 예법에 따라 착용되었다.
중인과 기술 관료의 복식
중인은 의학, 천문학, 율학 등 기술직 종사자와 하급 관료를 포함하는 계층으로, 고려 후기 사회에서 점차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인의 복장은 실용성이 강조되었으며, 일반 백성과는 차별화된 단정함과 절도가 특징이었다. 이들은 관복보다는 평상복 형태의 마포나 면직물을 주로 입었고, 일부 기술직은 기능적 복장을 착용하기도 했다. 중인층은 의복에서 과도한 장식을 피하며 계층적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점차 의식 있는 복식 문화를 통해 자존감을 표현하였다.
서민과 농민의 의복
서민층, 특히 농민의 복식은 노동 중심의 생활에 적합한 실용적 복장이 주를 이루었다. 삼베, 모시, 면 등의 천연 섬유로 만든 옷이 일반적이었고, 겨울철에는 솜을 넣은 두루마기나 무명옷을 입었다. 색상은 주로 흰색이나 회색 계열로 제한되었고, 화려한 무늬나 자수는 금지되었다. 여름에는 홑겹 저고리와 바지, 겨울에는 겹옷과 두건을 착용했으며, 여성은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고 단아함이 강조되었다. 서민들의 복장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의 대상이었으며, 공적인 장소에서는 의복 규제가 특히 엄격했다.
천민과 노비 계층의 복식
고려시대에도 천민과 노비는 존재했으며, 이들의 복식은 철저히 계층 아래임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설정되었다. 주로 거칠고 질 낮은 삼베나 마포로 만든 옷을 착용했고, 색상은 어두운 회색이나 갈색 계열이었다. 형식 자체는 단순한 바지와 저고리였으며, 특정한 복식 규범보다는 기능성과 내구성이 중심이 되었다. 귀족과 왕실의 소속 노비들은 주인의 체면을 고려해 정돈된 옷차림을 유지하기도 했으나, 공식 석상에서는 외부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단색 계열의 복장이 강제되었다. 이처럼 복식은 사회적 신분을 명확히 구분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불교와 복식 문화의 영향
고려는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불교문화는 복식에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승려는 일반 의복과 명확히 구분되는 승복을 입었으며, 가사나 장삼과 같은 전통 불교 의복은 색상과 형태에서 정갈함과 단순함을 추구하였다. 특히 국가행사에 참여한 고승들의 복장은 왕실의 예우를 받았고, 사찰의 경제력에 따라 고급 승복이 제작되기도 했다. 불교의 금욕적 가치관은 귀족 사회에도 영향을 주어 사치 금지령이 내려진 시기에는 절제된 복장이 유행하기도 했다. 불교는 복식의 철학적 배경에도 영향을 주며 당시 복장 예절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대외관계와 의복 양식의 변화
고려는 송나라, 요나라, 금나라 등과 활발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러한 외부 교류는 복식 양식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송나라 사신의 방문 이후 고려 관복에는 중국식 요소가 본격적으로 반영되었고, 요나라와 금나라와의 교류 시기에는 북방 민족의 복장 양식도 일시적으로 유입되었다. 외교 사절단은 상대국의 복장을 차용하거나 혼합된 복장을 착용하였으며, 이는 고려 복식의 다양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자국 고유 복식을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강하게 작용하였다. 이로 인해 고려 복식은 국제성과 전통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 양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맺음말
고려시대의 의복은 단순한 생활필수품을 넘어서 사회 구조와 정치 이념, 외교 관계를 반영하는 상징체계였다. 계층별로 세분화된 복식은 당시 사람들의 정체성과 역할을 시각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고, 이는 고려 복식 문화의 독창성과 사회 질서를 동시에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