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기와 고려 건국 사이의 시기는 한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 민중들은 기존 질서의 붕괴와 반복되는 혼란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사회적 의식을 형성해 나갔다. 단순히 지배층의 통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가 새로운 세상의 등장을 요구하고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민중 의식의 변화는 고려 건국이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중요한 동력이 되었으며, 이후 한국사에서 민심의 힘을 상징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본 글에서는 고려 건국 이전 민중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였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반영되었는지를 분석해 본다.
신라 후기의 정치 혼란과 민심 이반
통일신라 후기로 갈수록 중앙 정치 체제는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왕권은 약화되고 귀족 간의 권력 다툼은 극심해졌으며, 지방에 대한 통제력은 거의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백성들은 점점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 시작했다. 정치의 부패와 행정의 무능, 반복되는 자연재해와 전염병 등은 민중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고, 민심은 빠르게 등을 돌렸다. 민중들은 이제 기존 체제를 수용하기보다는 새로운 지도자, 새로운 질서를 희망하는 방향으로 의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경제적 불평등과 저항의식의 성장
귀족과 사찰의 토지 집중은 농민 경제를 무너뜨리는 핵심 요인이었다. 하층민은 과도한 세금과 부역, 고리대로 인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고, 국가는 이들의 불만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다. 오히려 권력층은 민중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는 데만 몰두하였다. 이로 인해 민중들은 처음에는 불만을 품고 저항하였으며, 이후에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민중의 저항 의식은 단순한 불평 수준을 넘어, 기존 사회 구조를 바꾸고자 하는 집단적 열망으로 발전해 갔다.
원종과 애노의 난이 보여준 민중 자각
889년에 발생한 ‘원종과 애노의 난’은 고려 건국 이전 민중 의식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난은 농민들이 단순히 조세에 저항하는 수준을 넘어, 무력으로 국가에 저항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원종과 애노는 스스로 지역을 통치하며 기존의 질서에 맞섰고, 이는 전국적으로 유사한 민중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민중은 더 이상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 변화의 주체로 나서기 시작했고, 이는 이후 고려 왕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반이 되었다.
종교적 사상과 민중의 기대
신라 말기의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종교는 민중의 정신적 의지처가 되었다. 특히 불교의 미륵신앙은 미래에 출현할 구세불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희망을 전파하며 민중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궁예는 자신을 미륵불이라 칭하며 정치적 권위를 확보하였고, 이는 종교가 민중 정치의식에 직접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였다. 도참사상, 밀교, 무속 신앙 등도 사회의 혼란을 해석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의 바람을 반영하였다. 민중들은 단지 물질적 안정만이 아닌, 새로운 가치 질서를 꿈꾸며 종교적 신념을 정치적 행동으로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호족과의 상호작용 속 민중의 선택
지방에서 성장한 호족 세력은 스스로 지역 통치를 실현하며 민중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다. 일부 호족은 무력을 통해 민중을 통제하려 했지만, 다수는 민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자율성을 보장하거나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민중들은 기존 중앙 귀족 대신 지역 호족에게 충성을 보내기 시작했고, 이는 새로운 권력 질서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왕건 역시 민중의 감정을 읽고, 안정과 통합을 중시하는 정책을 통해 호족뿐 아니라 민중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민중은 이 과정에서 ‘선택하는 주체’로서의 위치를 점차 확보해 갔다.
고려 건국과 민중 의식의 성과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면서 민중의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반영하였다. 그는 무력만으로 통일을 이룬 것이 아니라, 포용과 조화를 중시하는 정치 철학으로 민심을 끌어안았다. 과거제 도입, 유교적 행정 체계 마련, 불교와의 조화는 모두 민중의 불안정한 삶을 안정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왕건은 민중에게 국가란 억압의 대상이 아닌 보호자이자 조력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는 고려의 통치 기반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고려는 단지 새로운 왕조가 아니라, 민중 의식의 결과물이라는 해석도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맺음말
고려 건국 이전의 민중 의식 변화는 단순한 사회 불만의 누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중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로 떠오르며,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만들어낸 역사적 진전이었다. 이 흐름은 이후 한국사 전반에서 민심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