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비교적 높았던 시기로 평가된다. 조선이 유교 중심의 엄격한 부계사회 체제를 정립한 반면, 고려는 불교적 관용성과 혼합된 문화 속에서 여성의 활동 범위와 지위가 보다 넓게 인정되었다. 특히 고려시대의 혼인 제도는 부계 중심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가족 구조와 재산 상속 방식, 외가 중심의 양육 관행 등 독특한 사회 구조를 반영하였다. 이 글에서는 고려 여성의 사회적 지위, 가족 내 역할, 혼인 제도의 특징을 중심으로 고려 시대 여성상을 조명하고자 한다.
고려 여성의 전반적 사회 지위
고려 여성은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신분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조선시대보다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다. 여성은 종종 경제 활동에 참여하였고, 토지를 소유하거나 상속받는 일도 가능하였다. 귀족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혼인에 대한 선택권을 행사하기도 했으며, 이혼 후에도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였다. 또한 여성의 외출과 사회적 교류에 큰 제약이 없었으며, 여성 관직인 ‘내명부’ 역시 존재해 궁중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 이는 고려 사회가 여성을 단순한 부속물로 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혼인 제도의 유연성과 특징
고려의 혼인 제도는 부계 중심으로 정착되기 전, 상대적으로 유연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솔서혼(率敍婚)’이라 불리는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들어가는 형태의 혼인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는 여성 중심의 친족 구조를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이다. 혼인 후에도 여성은 친정과의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자녀가 외가에서 성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조선의 철저한 부계 중심 혼인 관습과는 대조되는 특징이다. 또한, 일부 귀족 가문에서는 남성이 처가살이를 하며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기도 했으며, 여성도 이혼 후 재혼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재산 상속과 여성의 경제 권리
고려시대에는 남녀 구분 없이 자녀에게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토지와 노비 등 생산 수단에 대한 상속은 여성에게도 비교적 공평하게 이루어졌으며, 실제로 여성의 소유 재산이 기록된 문헌도 존재한다. 귀족층 여성은 별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이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었으며, 상업 활동에 참여한 여성들도 존재하였다. 이는 고려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이 부분적으로 보장되었음을 의미한다. 고려의 이런 상속 제도는 이후 조선의 장자 상속 중심 체제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혼과 재혼에 대한 인식
고려시대는 이혼과 재혼에 대한 사회적 관용도가 높았다. 여성은 남편과의 불화나 폭력, 생활 유지 곤란 등의 사유로 이혼할 수 있었으며, 재혼 또한 일반적인 사회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귀족 여성의 경우, 정치적 이유로 반복적인 혼인이 이뤄지기도 했고,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재혼은 금지되거나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고려에서는 혼인 자체가 가문 간 결합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기에 제도적으로 얽매이지 않았다.
궁중 여성과 내명부 제도
고려 왕실에는 내명부라는 여성 관직 체계가 존재하여 왕비와 궁녀들의 위계를 규정하였다. 내명부는 정1품에서 종 9품까지 세분화되어 있었고, 궁중의 예법, 의식, 복식, 의전 등을 담당하였다. 이는 여성의 능력과 출신 배경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또한 일부 궁녀들은 승진을 통해 왕비나 후궁으로 지위가 상승하기도 했으며, 이들은 정치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내명부 제도는 고려 여성의 정치 참여와 궁중 운영에서의 실질적 역할을 나타내는 상징적 제도라 할 수 있다.
불교와 여성 지위의 연관성
고려는 불교를 국가의 근본 이념으로 삼았고, 이는 여성에 대한 관용적 태도로도 이어졌다. 불교에서는 여성도 수행과 해탈의 주체로 인정되었으며, 실제로 여성 승려들이 사찰을 운영하거나 경전을 필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성도 보시나 공양을 통해 사회적 덕을 쌓는 종교적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고, 일부 귀족 여성은 사찰에 재산을 기부하거나 사경을 조성하며 종교 활동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불교문화는 여성의 내면 수양과 사회적 인정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려 여성상에 대한 종합 평가
고려시대 여성은 법적·사회적·경제적으로 일정 수준의 권리를 보장받았다. 이는 단지 시대적 특수성 때문이 아니라, 고려라는 국가가 불교와 유연한 사회 제도를 바탕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은 혼인, 상속, 종교, 정치 등 여러 영역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는 고려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과 비교했을 때, 고려는 여성에 대한 제약보다는 기회를 열어두는 방향으로 사회가 운영되었고, 이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맺음말
고려시대 여성은 다양한 사회 구조 속에서 능동적으로 살아갔다. 혼인과 재산, 종교와 정치에 이르기까지 고려 여성은 자신만의 위치와 권한을 가지며 사회를 구성했다. 이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여성 중심의 제도적 흔적으로, 오늘날까지도 주목받는 고려의 문화적 자산이다.